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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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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라, 난 키가 작다. 베트남 선수도 체격이 작아 민첩하니 발빠른 축구가 가능하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를 두고 한 말이다. 지난 10월 10일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말레이시아를 1대0으로 꺾은뒤, 박항서 매직으로 추앙받으며 베트남에서 국빈급 대접을 받고 있는 박항서 감독. 베트남을 축구광풍으로 몰아넣으며 베트남축구팬들을 울리고 웃기는 박항서 매직의 시작을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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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박항서 상주상무 감독은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나며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말헀다. 상주상무를 프로축구 챌린지리그에서 클래식리그로 승격시켰지만 계약불가 통보를 받았다. 상주상무 계약불가 이후 박항서 감독은 중국 프로팀 감독 제의까지 무산되면서 기약없는 무직 생활을 하게 됐다.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다, 3부리그인 창원시청의 감독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2002년 히딩크감독과 함께 축구열풍을 일으켰던 박항서를 기억하는 이는 거의 사라진듯 했다.

 

 

박항서감독이 이끈 베트남팀처럼 개인주의를 깨고 한몸처럼 똘똘 뭉쳐 승리를 향사 달려가는 미라클스포츠클럽 선수들!

 

축구인생이 끝나버린듯했던 그때, 박항서감독은 한국이 아니어도 좋으니 축구를 계속하고 싶어 영어 이력서를 준비했다. 이력서 들고 이회사 저회사를 전전하는 구직자처럼, 박항서 감독은 지원서를 들고 이동준 이제이매니지먼트 대표를 찾았다. 그리고, 동남아시아라도 좋으니 감독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게된 박항서는 베트남 선수는 체력이 약하고 체격이 작아 축구를 잘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베트남식 축구 훈련에 심혈을 기울인다. 베트남인들이 체격이 작은 것은 맞지만, 그만큼 민첩하고 기동력 있는 축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https://youtu.be/oz4J1CMqB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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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첩한 축구를 위해서는 팀웍이 생명이었기에, 개인주의를 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베트남 선수들은 당시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때에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볼 정도로 개인주의가 심했다고 한다. 박항서 감독은 "밥먹을땐 스마트폰 금지" 규칙을 만들어 선수들이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며 팀워크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수직적이던 축구감독과 선수 관계의 틀을 깨고 선수들과 함께 똑같이 먹고, 생활하며 격려금이 나오면 주전과 후보선수에게 동일하게 나눠 가졌다.

 

선수와 감독, 코치가 한가족처럼 똘똘 뭉치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실력 향상의 기조를 보였던 베트남 축구팀은 마침내 베트남 축구역사 최초로 국제대회 준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박항서매직 박항서신드롬 박항서베트남신화의 시작이었다.

 

박항서매직은 이 작은 아이들의 발끝에서도 살아숨쉰다. 한국의 미라클매직을 꿈꾸며 축구에 매진하는 미라클축구교실 유치부 아이들.

 

박항서 감독은 더욱 치밀하게 파고들어 베트남 축구의 DNA를 바꾸고자 노력했다. 히딩크감독과 함께 2002년 월드컵을 치렀던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 히딩크감독은 한국 축구가 체력과 정신력은 좋은데 기술이 약하다는 편견을 깼고, 기술은 문제가 없고 오히려 체력과 정신력이 문제라고 진단하여 훈련방식을 완전히 바꾼것과 비슷한 시도였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축구는 약체라는 편견을 깨고 공격적이며 빠른 스피드의 축구만들기에 돌입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개인주의가 심하고 자존심이 센 국민성 때문에, 혼내거나 지적할 때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망신주기식의 발언은 할수없었다. 최대한 부드럽고 아프지 않게 이야기 하되, 잘못된 점을 이해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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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감독은 베트남축구의 전술도 바꾸었다. 배명호코치, 이영진코치와 상의하면서 민첩성이나 베트남 선수들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았다. 중앙 수비수를 세명을 두어 중앙을 두껍게 하고, 측면과 미드필더에 민첩하고 공을 빼앗기지 않는 능력이 좋은 선수를 배치하여 베트남선수들의 장기를 최대한 살렸다.

결과는 그야말로 미라클이었다. 축구로 미라클을 이룬셈이다.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의 열정도 다시 살아났다. 가족도 없고 술한잔 기울일 친구도 없는 베트남이었기에 오히려 축구에 집중하기 좋았다고 말하는 박항서감독.

 

은퇴를 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나이라고 여겨졌던 박항서 감독은 축구에서 다시 희망을 찾았다.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축구뿐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https://youtu.be/otBY5cJTSlA